노블엔진에서 매 분기마다 열리는 1챕터의 승부용 에메랄드 콘체르토 분량입니다.
아무래도 저 원제는 일종의 가제고 꽤나 스토리가 진행되고 나서야 그 의미가 나오기 때문에[각주:1],
일단은 1챕터에서 나오는 요소들로 제목을 짜본게 저렇게 됐네요.
컨셉이 결정적인게 하나 추가 됐습니다. 동양풍 + 휴대폰 = ?! 인데요. 은혼처럼 외계인이 아예 통째로 나타난 것도 아니고, 그냥 '휴대폰'과 그와 관련해서 휴대폰이 돌아갈 조건들이[각주:2]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그런 설정입니다. 그리고 막 떨어진 시점이 아니라, 어느정도 규랑국 사람들이 휴대폰 조작에 익숙해 진 시점이구요. 문자 엄청 잘씁니다.
굳이 따지자면 영상통화는 안되는 2G폰들입니다(...) 아니, 3G로 기존에 있는 폰이라도 영상통화 기능은 뺐어요.
나중에 휴대폰 묘사를 하겠지만, 령현과 령우는 매직홀 핑크(령현)/블루(령우)[각주:3], 여련은 아이스크림폰(민트), 유철은 롤리팝정도가 될 듯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기니까 접었어요.
오픈!
♬ 시작. 봄회랑, 3월.
주령현의 손끝에서 붉은 피가 토독, 토독 떨어져 흘렀다. 그 보랏빛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 제 눈앞의 사람을 유심히 관찰했다.
자객은 다행스럽게도 하나. 예조의 봄회랑[春回廊]까지 오는 길이 복잡했을 텐데도 그 검은 옷은 아무런 더러움 없이 그저 까말 뿐이다. 실력이 기가 막히게 좋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아침인데 까만 옷이라니, 감각은 실력과 비교하자면 꽝.
단검의 손잡이, 날 양식을 보아하니 최근 유행을 알고 있다. 날카로운 눈매 내에서 보이는 회색 눈동자. 혼혈이다. 그리고 왼손잡이면서 장갑도 안 끼고 오히려 반지를 끼고 있다. 소소한 결혼반지. 애처가? 아니면…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인가?
"아저씨, 실력 진-짜 좋은가 보네?"
그러는 자신도 능숙하게 머리를 고정하던 비녀를 뽑아 단도를 막아내는 중이었다. 암살자가 당황했다.
"이보쇼, 내가 자객씨 한두 번 상대한 것도 아니고-"
자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짤랑짤랑 거리는 귀걸이 소리보다 소녀의 입에서 나온 욕설이 크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지랄도 유분수지."
챙!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귀에 감기자 또다시 자객이 놀라는 눈치였다. 비녀로 보았던 그것은 어느새 단검이 되어 있었다. 놀랄 틈도 없이 반격이 시작되었다. 살포시 깨문 입술,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 그리고 잔인하게 춤추는 그녀의 몸과 하늘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아가씨의 몸놀림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자, 그럼 여기서 하나 던져보자고."
소녀의 여리한 목소리가 지옥불이 있는 그곳처럼 낮아졌다. 마치, 남자 목소리처럼. 그 변화를 눈치채기 이전에 자객은 제 왼손목이 허공을 가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당신의 현재 목표, 취옥 주가[翠綠玉]의 '장녀'는,"
주저 없이 단검을 꽂은 곳은 오른손목은 가벼이 꿰뚫은 그 바로 밑, 나무바닥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힘은 이미 어린 여자아이의 힘을 초월했다. 자객은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혀 밑에 즉사할 수 있는 약이 있는데도 씹을 수 없었다. 자객이란 직업을 직으로 삼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엄청날 정도의 패기였다.
"과연, 실존인물일까나?"
자객 주제에 반지를 낄 정도의 허세를 부리던, 자신의 목표던 그런 건 필요 없다. 하지만 장소가 곰팡내 나는 봄회랑이라면, 자신의 집이라면,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앗아가려 한다면, 기꺼이 그녀, 아니 그는 이런 이명을 자신에게 달아줄 수 있다.
"미안한데 아니거든 아저씨. 난 언제나 어디서나 주가의 장남, 더럽게 싫지만 차기 황제 내정자, 그리고 언젠가는 만인의 살인마 예정."
그녀, 아니 그의 눈빛이 광기를 꿰뚫었다.
비녀 모양의 조그만 단도의 손잡이를 쭉 빼니 칼날의 서늘함을 그대로 빼 온 강철로 뽑은 실이 빠져나왔다. 그에게 주저는 없었다.
서걱, 하고 종이 잘리는 소리보다 좀 더 단단한 것이 잘리는 소리가 봄회랑에 울려 퍼졌다. 여전히 그 소년에게는 표정 변화라고 할 것이 없어서, 누군가 본다면 분명 소름이 한가득 끼치기까지 했을 것이다.
"아, 하나 더 있네. 날개[翎舷]."
하지만 그런 소름이 끼침을 느낄 사람은 조용한 봄회랑 내에서 주령현을 빼고 봄회랑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 제 1장. 좌례궁, 3월.
"아가씨 하나, 아저씨 하나. 뭐, 그런 조합일 것 같은데?"
"폐하. 당신 궁 안에서 일어난 일이잖습니까."
참으로 나긋나긋하며 조그마한 황제와 달리 거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키가 큰 사내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풀색의 왼쪽 눈, 진한 핏빛의 오른쪽 눈이 초조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듯 뱅글뱅글 중심을 찾지 못하는 모습은 황제에게 있어 좋은 구경거리였다.
아무렴, 어딜 가서 구경하겠나. 황제의 약혼자가 토요일 아침부터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꼴을.
"뭐 어때. 여余의 주거관할지역 아니면 상관은 크게 없을 듯한데."
혼유철이 이를 뿌득, 갈았다. 황제란 사람이 참 느긋해서, 초봄인 3월에 온몸에서 열이 나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 전에, 궁이라는 곳 전체가 이미 자신의 주거관할지역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러고 보면 육조의 관할지역은 황제가 관여할 수 없는 구역이긴 했다.
"그나저나 유철, 요즘 말본새에서 예의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폐하 같으면 말본새 차릴 여력이 있겠습니까?"
"첫날밤도 치렀으니 남자로서 갖출 건 다 갖췄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고?"
"말이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저런 반응이 좋단 말이야. 황제의 들리라고 하는 혼잣말에도 혼유철은 내버려두기로 했다.
꼬맹이 주제에 별걸 다 아는 게 영 짜증 났다. 저런 꼬맹이랑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자신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냥 잠만 잔 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었지만,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저 조그마한 몸은 이미 어린아이의 선을 넘어버린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확인한,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정삼품 무관직인 절충장군이 굳이 나설 일인가 싶기도 하고,"
뒤돌아 나가려는 혼유철의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발걸음이 멈춰졌다.
"나선다 해도 아마 유철이 할 일은 시체랑 혈흔 치우는 일이 전부일걸. 근데 그건 절충장군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잖아."
"그걸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어머, 유철도 생각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
땋은 머리를 빙빙 손가락으로 돌려대며 지나칠 정도로 여유로운 황제.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뼈 있는 말을 듣고 여닫이문을 꽝 닫으며 나가는 그의 모습에 황제는 기가 막힌 듯 중얼거렸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차기 황제 후보라면 그쯤은 혼자 할 수 있다는 말… 조금 더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
"어머나아★ 혼 장군님이시네요!"
봄회랑의 대문을 열고 장지문까지 여니 피 향이 확 올라왔다. 것보다 잠시만, 혼유철은 제 귀에서 머문 목소리를, 정확히는 그 내용을 의심했다. 어머…나?
"정말이군."
"뭐가요?"
예조좌랑 앞에서 혼유철은 허허, 웃었다.
"정말, 그쯤 처리하셨군요, 좌랑."
"아니 뭘요? 아하, 이거요?"
시체를 보고 이거라고 하는 그 강심장인지 무감각인지 모를 모습. 자신이 보아왔던 이 나이대 소녀들의 모습을 주령현은 무참히 짓밟고 있었다.
"본인께서 처리하신 겁니까?"
"아아, 네. 이런 것도 익숙해지니까 대충 방법은 알겠더라구요."
양갓집 규수고 뭐고 그 깔끔한 처리방식이 기가 막히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문서들, 그리고 그녀의 옷에 피가 튄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뭐로 공격해서 처리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규수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다는 은장도? 아니…. 치마 속에 무언가 숨기고 있다던가라는 생각이 유철의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생각과 달리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호위무사는 어디 두고 혼자 계시는 겁니까?"
"동생은 오늘 안 왔어요."
이 와중에 흥! 하는 귀여운 소리가 들렸다.
"자긴 토요일이니까 쉬겠대요. 언니만 잔여수당 있는 거 아니냐고 짜증 부려서 그냥 버리고 왔어요. 완전~ 나쁜 동생 아니에요? 그걸 여동생이라고!“
조금 전에 자객 하나를 왼쪽 손목은 날려버리고, 오른쪽 손목을 꿰뚫어버린 살인자 아가씨가 한다는 말이 여동생 험담이었다.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죽인 것이니 도덕적으로 혐오를 느끼거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속으로는 기가 막히지만 유철은 그녀의 대화에 맞장구쳐주기로 했다.
"자매들도 자주 싸우는 모양이더군요."
그 말에 토끼 귀라도 있었으면 쫑긋, 귀를 세웠을 반응을 보여주는 필연 16살의 아가씨.
"아무렴요! 형제들, 남매들만 잘 싸우는 줄 아세요? 자고로 형제兄第랍시고 태어난 것들은 이게 운명이에요, 운명!"
아니 잠깐만, 거기서 왜 운명을 운운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볼 법한 말이지만 유철은 별로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오히려, '그럼, 이 아가씨라면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겠지. 이 시체마저 이렇게 만들었는데 뭔 말을 못할까?'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럼 치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의 문서라던가 옷에 혈흔이 없는 것을 보면 실력이 좋으신 모양이군요."
살짝 운을 띄워 본 말. 그 말에 주령현은 아까와 달리 가라앉은 보랏빛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무심히 답했다.
“아무렴요. 빌어먹을 차기 황제 내정자잖아요."
♪
영양가 없는 어전회의가 드디어 끝났다. 발과 천에 가려져 있던 황제의 얼굴은, 그야말로 돌처럼 굳어 있었다.
도대체가, 한 나라의 관리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대화가 겨우 저 정도라니, 황제는 그들이 한심해 고개를 저었다. 회의의 시작과 끝이 전혀 맞물려지지 않는 이상한 전개.
그런 전개를 황제는 알면서도 제지하지 않았다. 과연, 저 인간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미엔, 유철에게 이런 말까지 듣게 되었다.
“차라리, 수렴첨정이라고 인정하시지요, 폐하.”
“흥, 여가 그만큼 무능함을 대대적으로 인정하라는 소리라면, 사양하도록 하지.”
지금의 황제에 대한 평을 제일 가까운 측근인 유철의 시점으로 짚어보자면, 절대로 무능한 편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올라온 일은 최선의 방향으로 제시하고, 그렇게 되게끔 하는 것에 능통하니 성군이란 소리를 황제가 된 이후 내내 듣고 있는 황제.
하지만 사태를 꽤 방관하는 면도 없잖아 있고, 때때로 황제라는 직함에 맞는 유능함을 보일 때보다는 무능하게 있는 때도 자주 보였다. 그나마 측근이니까 이 정도까지 알지,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황제의 면을 알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운빨 좋은 황제, 라고 해야 할까.
“예조에서 올라왔던 규랑원 외국인 학생 기본조례안은 그나마 건질 만했지만.”
“아아, 그 조례안 말입니까.”
유철도 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 조례안은 큰 얘기 없이 살짝 언급만 되고 곧바로 넘어간 사항이었다. 예조 사람들의 모든 글씨체를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보는 글씨체로 보아, 갓 들어온 주가의 아가씨가 쓴 것이란 추측이 머릿속에서 팟 지나갔다.
“처음 보는 글씨체인 걸 보면 주가의 영애가 쓴 것 같은데, 일은 제대로 잘 해내고 있는 모양이더군.”
“꽤 강단 있는 아가씨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번 주, 어전회의 직전 만난 그녀와의 대화에 유철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겨우 열여섯 살이라고 어린아이 취급하기에는 올곧은 강단과 패기가 보랏빛깔 눈동자에서 강하게 드러났던 아가씨. 또래의 남자아이들도 가지고 있지 못할 그런 강한 기백에, 오히려 무관인 유철이 기가 눌릴 뻔했다. 저번 주 토요일, 봄회랑을 기습했던 자객을 제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살해했던 그런 아가씨니, 기본적인 깡은 증명한 셈이다.
“여의 다음 대라면, 그러지 않고는 안 되겠지.”
황제는 자신의 물빛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다시 제 손에 들려있는 두루마리를 유철에게 넘겨주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결국엔 무능한 관리들의 싸움질이나 중재하고 구경하는 게 황제의 역할이라니, 완전히 틀렸잖아? 의정부고 뭐고 다 해산시켜버릴까, 유철?”
“그 많던 인원수를 잘라버리신 건, 폐하십니다.”
“어차피 그만큼 노는 인간들도 많고 비리도 많았으니 그렇지. 제길, 문자를 쐈으면 답을 하라고 이 빌어먹을 할아범아!”
황제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쳐다보며 화를 바득바득 냈다. 유철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황제는 곧바로 다음 말을 이어 뱉어냈다.
“영의정? 흥, 웃기고 있네! 어차피 자신의 손녀가 황제니 그 자리도 가능했던 거라고! 유능해? 웃기지 말라고 해! 요즘 세상엔 왜 이렇게 믿을 인간들이 없는 거야!”
“폐하?”
“하, 미치겠네! 유철, 좌례궁 안, 너무 답답하단 생각 안 들어? 나가야겠단 생각도?”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말에 유철이 무어라 답을 하기도 전에, 황제는 바로 앞에 있던 발을 자신의 팔로 걷어 올렸다.
“여는 도저히 못 버티겠거든? 월요일부터 이게 무슨 짓거리야, 진짜!!”
“최소한 궁녀라도 부를 틈을 주십시오!”
“흥, 어차피 거슬려. 지금은 누군가 따라온다는 것 자체가!!”
작은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이, 어쩐지 대단하다고 유철은 생각했다. 그럼에도 황제는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이, 그녀를 따라오려는 유철에게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유철은, 그래도 따라올 거지?”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래, 어쩔 수 없지. 숨도 쉬지 않고 계속 말을 내뱉었는지, 황제는 심호흡 몇 번을 번복하고 나서야 제대로 다음 말을 내뱉어냈다.
“후우, 아침 산책 겸해서 좀 나갔다 와야겠어. 궁녀 부르지 마. 절대. 유철만 따라와.”
“……알겠습니다.”
주말에 말했던 시체나 혈흔 치우는 일이 절충장군이 할 짓은 아니라고 분명 그녀의 입을 통해 들었던 것 같지만, 유철은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좌례궁의 문을 벌컥 열자, 바깥에 있던 궁녀들이 놀라 “폐, 폐하!”를 연발했다. 유철은 그런 그들에게 절대로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번복해서 일러주고, 그녀의 짧은 발걸음을 뒤따라 나섰다.
뒤에서 보는 그녀의 몸은, 바로 앞에서 보던 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또래와 비교하면 유달리 큰 가슴은 등 뒤에서─정확히는 따라 걸으며 내려다보는 눈높이에서─도 굴곡이 보일 만큼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푸른 도포 안에 몇 겹이나 입었을 텐데도 존재감 하나만큼은 확실할 정도였다.
도포보다 상당히 밝은 하늘색 머리카락은 땋았음에도 엉덩이를 넘어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길었고, 머리를 장식한 비녀는 열두 살이 하기엔 조금 버겁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지만, 본인은 그런 얘기를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으니 괜찮겠거니, 하고 넘겼던 일이 대부분이었다.
열두 살. 그 나이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소녀. 황제로서는 3년째 규랑국이라는 나라를 통치하며, 생각과 달리 성군이라는 것을 유철의 눈앞에서 수십 번도 증명했던 소녀였다. 약혼자라는 이명 아래, 그런 장면들을 바로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유철의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쓰렸다.
그녀가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권한으로 일어났던 그의 가문, 황옥 혼가의 대대적인 숙청사건. 그 안에서 살아남았던 혼이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 중 하나. 그게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이 왜 자신의 가문을 파탄 내기 직전까지 몰아간 명령을 내렸으며, 그 혼돈에서 살아난 자신을 약혼자로 지명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미안함과 동정심? 아니면, 저 어린 꼬맹이가 할 수 있는 정치적 수완의 한 장?
“저, 유철.”
“아, 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앞만 보고 걸어가던 황제가 잠시 멈춰 섰다.
“저 아가씨, 아마 주가의?”
“네, 아마도 동생 쪽일 겁니다.”
황제가 바라본 쪽은 좌례궁과는 반대방향에 있는 개인 호위무사들이 기거하는 무림원 건물, 그리고 그 건물을 등지고 나오는 어린 아가씨였다.
탁한 자주색 머리카락, 혹은 밝은 팥죽색 머리카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약간 곱슬진 머리와 그 아래엔 빛나는 태양을 둘로 나눠 넣은 눈동자.
얼굴의 선이라던가, 전체적인 균형을 보면 확실하게 여성임을 인지할 수 있는 외형이지만, 단순히 그녀가 ‘아가씨’가 아닌, ‘호위무사’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달고 있는 노리개의 무늬와 옷의 배색, 갑옷을 숨기기 위해 위에 덧대어 입은 옷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쪽에서도 이들을 발견했는지, 가만 서 있던 두 사람에게 그녀가 씩씩하게도 걸어왔다. 호위무사지만 어쨌든 국가 소속의 병사 중 하나로 취급하기에, 그리고 그 이전에 유철의 생김새를 알고 인사를 오는 편이 다반사였고, 역시나 이 아가씨도 마찬가지였다.
“무림원 소속 호위무사 호서야虎瑞夜 주령우입니다. 장군님.”
깍듯한 묵례에 이어, 그녀는 그 앞에 있던 황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폐하를 뵙게 되어서 무궁한 영광입니다.”
“!!”
묵례를 넘어서 아예 허리가 90도로 꺾일 정도의 인사를 한 령우는, 고개를 들어 제 눈높이 아래의 황제보단, 좀 어렵더라도 제 눈높이 위의 유철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녀의 행동엔, 이 어린아이가 규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라는 것에 대해 놀란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정삼품 보직 절충장군께서 호위하실 분이라면 폐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아무리 복식을 간결하게 해도 다 티가 난다니까. 여하튼 반갑네. 언니와는 잘 적응하고 있는가?”
넉살 좋게 웃던 령우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진동이 들려왔다.
“…죄송한데 폐하, 잠깐 문자 좀 봐도 될까요. 언니도 참.”
“그리하거라.”
곧바로 허락을 얻어낸 령우가 능숙하게 엄지손가락으로 폴더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곧바로 보이는 수신문자에 그녀의 기분이 얼굴에 다 드러났다.
[나좀살려줘동생아 나죽을거같아ㅠㅠㅠㅠ 작작좀일시키라고]
“…저 폐하, 예조의 인력을 좀 보강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황제는 그에 대해 없다고 짧게 답했고, 령우는 난처한 기색이 되었다.
“언니한테서 하루에 두세 번은 죽겠다고 문자가 오거든요? 그래두요?”
“으음.”
“이건 적응의 문제라기보단 그냥 한 사람 실려 나가야 해결 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폐하?”
만난 지 1분도 안 되는 사이 극존칭에서 묘하게 존칭으로 가라앉은 것 같은데, 말하는 사람이고 듣는 사람이고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처음에 유철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황제는 령우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었다. 말리지 말라는 의사 표시였다.
“아직은 계획엔 없지만, 회의는 해 보겠네. 따끈따끈한 신입을 과로로 쓰러지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삼의정 및 그 밑의 대관들이 결사반대를 하겠지만, 일종의 입 바른 거짓말로 그녀를 안심시킨 황제는 그녀를 향해 살포시 웃어주었다.
“앞으로 잘 해주게. 그런데 쌍둥이라 해서 헷갈릴 정도의 외향은 아니겠지?”
“예. 이란성이고 멋 부리는 것도 언니 쪽이 더 대단해서요.”
“제 기억에도, 령현 양과는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생김새군요.”
“네, 일단 눈동자 색 자체도 다르고 하니까. 전 그리고 호위무사라 언니처럼 하진 못해요.”
호탕하게 웃어넘길 줄 알았더니, 되려 아가씨다운 웃음을 짓는 령우의 표정에서, 유철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한낮 신출내기 호위무사가 이 규랑제국의 폐하를 뵙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물러가옵니다. 어, 절충장군님도 다음에 무림원에서 뵙길 바랍니다.“
“이만 물러가도록 해라.”
“옙!”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가던 방향으로 뛰어가는 령우의 바람 같은 뒷모습이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지자, 황제가 푸훗, 하고 웃었다.
이 궁엔 저런 어린 호위무사 말고도 궁녀도 있고, 왕실의 운을 점치는 무당이라던가 무녀들도 있지만, 저런 식으로 자신에게 아무 악의 없이 다가왔던 소녀는 긴 황궁 생활 동안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어디선가 느낀 듯한 그리움이라는 감정도 어렴풋이 그녀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발랄한 아가씨군.”
“무례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신 모양이더군요. 입궐했을 당시에도 보신 적 없지 않습니까.”
질책하는 그의 목소리에, 황제는 가만히 웃어 보였다.
“악의 같은 건 전혀 없었거든. 그 눈도, 말도. 잠깐 무녀로서의 힘을 개방할까, 고민했을 정도로 제 속을 모두 내보이는 존재는 처음이었어. 피곤하게 의심을 하고, 추측이 난무하고, 속을 떠볼 존재가 아니었다는 거지.”
유달리 밝은 목소리가 그녀의 기분을 더욱더 증명하고 있었다. 12살의 어린아이가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연륜이 담긴 말이지만 유철은 그간 이런 모습들을 자주 봐왔고,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다.
“기분도 좋은데 전체문자라도 쏴볼까, 대신들한테.”
“폐하?”
“뭐 어때. 진명으로 보내면 다들 뻘문자다 뭐다 하면서 삭제하겠지. 안 그런 가?”
“그것보다 황제의 진명은 대놓고 그렇게 쓰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세상 어떤 황제라도 자신의 진명을 문자 같은 것에 소비하는 잉여로운 짓을 한다면, 분명 히 이 황제밖에 없을 거라고는 말하고 싶지만, 이 금발의 청년은 차마 말까진 꺼내지 못했다.
“후훗. 남여련이라는 이름, 약혼자의 권한으로 알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야?”
“가족입니다. 전.”
호오, 그래? 라고 입을 여는 황제의 말에, 유철은 아까와는 다른 이질감을 느끼며 그 발걸음을 따라가야만 했다.
♪
─ [전체문자] 오는 수요일 오전 10시경, 긴급 어전회의를 열겠다. 다만 좌례궁이 아닌 나신각螺蜃閣에서 잔치와 함께 열 예정이다. 황제. 수신번호 010-XX42-XXXX
띠링띠링, 하는 맑은소리가 봄회랑에 울려 퍼졌다. 대부분 휴대 전화를 진동으로 해놓고 있었고, 이렇게 대놓고 문자 음을 들리게 할 수 있는 것은 기계치인 예조의 이인자, 예조참판뿐인데 문제는 이 문자 음이 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엥? 이게 왜 나한테 와?”
바로 봄회랑의 따끈따끈한 신입, 주령현의 휴대 전화 문자소리였다.
“판서님, 령현이 직무유기해요!”
“아, 아니, 그게 아니구요 언니! 이 문자 봐보세요. 왜 이게 나한테 왔지?”
령현의 바로 옆에서 자료를 정리하던 화려한 차림의 아가씨가 그의 휴대 전화 액정을 바라보고는 어머, 하고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을세? 난… 안 왔는데?”
“무슨 일인가, 시화 양.”
예조판서가 아닌 예조참판이 대신 와 그녀─찬시화의 부름에 답했다. 원래는 하관인 그녀들이 직접 가야 하는 일이지만, 예조는 활동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먼저 움직이는 것이 철칙이었다.
“참판님. 저 고관高官 아니잖아요.”
“그렇지.”
“근데 왜 이게 저한테 왔을까요?”
꽤 당황스러웠던지, 문자를 보여주는 그녀의 손은 살짝 떨고 있었다. 그녀, 아니 그는 속으로 지금 황제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면서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라면, 이라고 혼자 여러 갈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부분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개인의 휴대전화번호였다. 황실 공식 전화번호는 1053-0603. 사칭문자일 거란 생각도 어렴풋이 해보고 있는 령현이었지만, 참판은 그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굳어버린 기색이 역력했다.
“황제 폐하가 맞으시는군.”
“예!? 잠깐만, 근데 무슨 이런 내용을 개인 전화로 날려요?”
당황한 것은 령현 뿐만 아니라 참판도, 바로 옆의 시화도 마찬가지였다. 이 번호로 왔다는 것은, 고관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특별히 정육품 직인 령현에게까지 보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조좌랑 주령현의 호위무사 호서야 주령우… 어? 무슨 일이에요?”
이 와중에 봄회랑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령우의 표정은 꽤 상기된 모습이었다. 발간 볼은 둘째치고 꽤 즐거워 보이는 표정은, 령현의 당황한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어서 오게나, 령우 양. 혹시 자네, 폐하를 뵈었나?”
참판의 말에 령우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라지면서, 그 입에선 더듬대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으음, 관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군. 조만간 폐하를 정식적으로 뵈어야 할 것 같네.”
“자 봐봐. 이 문자. 참판님 말씀으론 사칭문자는 아니라고 하더라고.”
령현이 자신의 휴대전화 액정을 내밀자 봄회랑을 금방 가로질러 온 령우가 휴대전화를 곧바로 낚아챘다. 빠른 속도로 눈으로 읽던 령우가 이 문자에 대해 이해할 즈음엔, 그녀의 표정은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난감한 기색이 드러나고 있었다.
“인재에 대한 늦은 예의일까.”
“한 달 빡빡하게 굴리고 그다음에 나름 적응은 했나, 하고 궁금하신 거일 지두요. 저야 뭐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오… 아니 언니라면 그럴 만도 하고. 전 그런 문자 없었거든요.”
능숙하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달칵, 하고 여는 령우의 표정은 꽤 담담했다.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령우 양은 호위무사 자격으로 따라가야 할 수밖에 없다네. 령현 양 본인만 오란 소리도 없었고 말이야.”
“하지만.”
참판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을 살짝 올리는 사이, 령현이 입을 뗐다.
“령우까지 움직이게 되면, 금방 알지 않을까요. 설사 아는 게 아니더라도, 황제랑 관련이 있다는 것쯤이야 다들 알 거고.”
“그렇겠지. 겨우 정육품이면서 호위무사와 같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논란이 될 지도 모르겠네. 설사 많이 봐줘서, 아무리 여성이라서 그 호위무사를 대동한다 해도, 호위무사마저 여성이라면 대부분 의심은 해보는 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자네 처지를 생각해보자면, 령우 양이 빠진다는 전제가 더 위험하네.”
주령우라는 존재가 막강해서 혹여 사고가 난다 해도 처리를 잘 한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령현 역시 자신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을 정도지만, 지난 토요일에 일어났던 암살 미수 건은 황제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법으로 이 궁궐에 들이게 했다고 해도, 그것이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던 사건이었다.
자신이 공개적인 공간에 존재하던, 비공개적인 공간에 존재하던, 자신의 모습이 여자여도 가차가 없다는 사실이 눈앞에 놓여 있다. 그 사실이 슬금슬금 몸을 타고 올라와 목을 조르는 듯한 기분이어서 령현은 질끈 눈을 감았다.
토요일의 사건은 추측이지만 예조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판서와 자신, 그 시신을 보았던 혼유철과 황제 정도만 알고 있었다. 령현은 그 사건을 다른 사람에겐, 심지어 동생인 령우에게조차 입 밖에 내질 않았다. 생각 같아선 동생을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지만, 살짝 뜬 눈으로 흘끗 바라본 령우의 눈은 완고했다.
그리고 이 진지한 상황에서 또다시 령현의 휴대전화가 문자 하나를 토해내면서 동시에 다른 곳에서 진동이 울렸다.
─ 김미영팀장입니다고객님께서는최저이율로최고3000만원까지30분이내통장입금가능합니다
“……왜 또 와 이건.”
“아오, 나도 또 왔어. 난 통장 같은 거 없다고!”
“3천만원? 여기 단위 냥인데? 정신 나간 놈인가.”
“이왕 된 거 3천만 냥으로 해달라고 답신…….”
나름대로 분위기에 편승해서 뭐라도 한마디 더 하려던 시화가 다시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흠, 저기, 령현아. 어차피 령우는 네 호위무사 자격으로 입궁할 수 있었던 거잖아. 같이 안 가는 쪽이 더 이상하다구.”
“어차피 내가 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어. 그냥 양갓집 규수가 호위무사 데려왔거니 하고 말겠지. 과잉보호……. 라기보단 자기 과신이라고 하는 쪽이 더 맞나.”
꽤 긴 시간동안 묵묵부답이던 령현은 끝내 그들의 말에 수긍하고는 답답한 듯 봄회랑 바깥으로 나갔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그 뒤를 졸졸 따라오는 령우가 봄회랑의 문을 닫았고, 그와 동시에 높고 가늘었던 령현의 목소리는 16살의 사내아이로 되돌아와 있었다.
“토요일에, 너 안 왔을 때. 자객이 침입했었어. 내가 목표였는진 잘 모르겠다만, 잔여수당이 있던 건 나뿐이었으니 나였겠지.”
“뭐!? 뭐야, 오빠! 그런 얘기를 왜 이제야 하는 건데?”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음에도 령현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는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 당시 같이 있지 않았던 령우 쪽이 더 당황한 기색이었다.
“괜찮아. 내가 뭐 다친 것도 아닌데.”
“그게 아니잖아, 오빠!”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로 령우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그 눈을, 령현은 바라보지 않았다.
“아무리 이름만이라지만 난 무관이야! 아니, 무관 이전에 오빠 호위무사 자격으로 궁에 들어왔어! 황제 내정자라는 사람이 애초에 호위무사 하나만 덜렁덜렁 데리고 온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뭐? 자객이라니……! 그리고, 잔여수당 있는 걸 아는 사람이면, 궐 내부 사람의 소행이란 거잖아?”
“그래서 지금 엄청나게 후회 중이라고, 이 오빠가.”
하늘하늘 산들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살포시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나만 목표면 넌 아무 상관 없…….”
“뭐가 상관없어? 난 쌍둥이 동생이라고. 호위무사고 뭐고 그 전에……. 그 전에, 하나뿐인 형제잖아!”
자신이 원한 일에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움직이는 녀석. 그래서 독불장군이라고도 누군간 말했고, 고집불통이라고, X고집이라는 말도 꽤 들었었던 령우였다.
그리고 매번, 령현은 그 고집에 졌었다. 동생이라 진 것이 아니었다. 그런 혈육적인 문제를 떠나, 령우는 어릴 적도 지금도 지나칠 정도로 보는 눈이 정확했다.
어릴 적,
처음 만났던 그날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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