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검은 날개가 저 하늘로 날개짓을 할 듯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그 거대한 몸통을 얇은 네 개의 발이 지지하고 있다. 거대한 흑조라고 불리는 검은 색 그랜드 피아노. 나와 지난 10년을 같이 한, 내 모든 저질스러운 연주를 묵묵히 연주해준 고마운 녀석.
조율 몇 차례, 장마시즌이 되면 나무인 속이 눅눅해져 소리가 잘 울리지 않아 건조기를 내부에 달기도 했고, 주인이 변덕쟁이라 매 년 있던 자리도 달랐었다. 처음에 치던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 바이엘과 간단한 소곡집이었지만, 책거리를 한다 치면 엄청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책이 내 손을, 이 피아노를 거쳐갔다.
속도도 무시, 건반도 무시하면서 마구마구 즐겁게 쳤던 유년과 달리, 지금은 정해진 악보에 정해진 음을 정확한 리듬과 박자에 맞춰서 연주해야 ‘넌 참 연주를 잘하는구나’ 소리를 간신히 들을 정도가 되었다. 가끔 결혼식에 가서 알바로도 쳐 보았고, 성당에서 얼마간 찬송곡을 연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피아노를 거쳤던 내 손은 종래에는 이 낡고 더 이상 조율도 불가능한 거대한 흑조가 제일 마음에 들었고, 제일 죽이 잘 맞았다. 이 녀석이 더 이상 피아노로써의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해도, 혹은 내가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다 해도. 좋은 주인은 되지 못했지만, 이 피아노에게 나의 연주가 최고의 연주이길 바라면서 다시 그 앞에서 주저하기를 수십 번.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후욱, 심호흡을 한다. 두 팔을 유연하게 들어올려, 양 손을 살포시 건반 위에 얹는다.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피아노와 나만 있다고 생각하고, 첫 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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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서 마에스트로가 되기는 무척이나 힘이 드는 일이었고, 나 역시 그랬다.
실은 피아노를 시작하고 7년 후까지는 정상적으로 살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앞을 볼 수 없게 되면서 악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차라리 이럴 거라면 양 팔 다 영영 못쓰게 되버려서 폐인처럼 되는 것이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베토벤은 청각이 문제였지만, 그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악보를 만들 수 있었다. 30대가 되었을 때 청각을 잃었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막 체르니 50번 중반을 연주해야 하는 아마추어였고, 그 즈음 일부 피아니스트들이 겪는 우울증까지 겪게 되면서 최악에서도 최악 그 자체였다.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게, 잔인한 현실을 저주하기를 수십 번. 결국 나는 저주도 포기한 채 모든 것을 달관하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더듬더듬 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이 쯤이 도#던가, 하고 뎅 울려보는 음은 도#이 아니었다.
이 쯤이 미던가, 하고 뎅 울려보는 음은 미가 아니었다.
이 쯤이 시던가, 하고 뎅 울려보는 음은 시였다.
전과 같이 손을 뻗는 것인데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 추가되었을 뿐인데 내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간단한 걸 쳐볼까 해서 생각나는 곡도 전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까만 공간. 목표를 잃어버린 망망대해의 흰 보트처럼 나는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피아노는 조용히, 내 울음을 지켜봐주기만 할 뿐이었다.
◆◆
내가 피아노를 시작한 것은 한 때 일어난 피아노 붐에 편승한 어머니의 요구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다 그런 붐을 타고 자신들의 자식도 혹여나 그런 재능을 발견하지 않을까란 기대감에 아이를 보내고, 학원 선생의 입에 발린 말을 듣고 정말 재능이 있구나 한다. 하지만 진짜로 ‘천재’라는 것을 본인이 직접 보게 되면 아, 내 자식은 별 게 아닌 아이로구나 하고 실망하는 것을 번복한다.
솔직히, 초등학교 막 입학한 애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터라 피아노 학원에선 오기 싫다고 엉엉 민폐에 땡깡을 부리는 게 첫 날 내가 했던 짓. 결국엔 다니게 되었지만 키가 너무 작아서 쿠션 하나를 깔고 앉아서야 간신히 피아노를 칠 수 있었고, 평범한 아이 치고는 꽤나 빨리 옥타브를 오고 갈 수 있는 악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손가락이 선천적으로 워낙 작아서 도에서 도까지 스타카토를 치지 않는 이상은 무리였지만, 자라면서 손도 커져 그 방면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 해결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기형적으로 휘어지는 것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를 다 보낼 즈음 일어난 교통사고로 나는 영원히 앞을 볼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고, 더 이상 피아노 연주라는 것이 나에게 어떤 보상도, 의미도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누구의 위로도 들리지 않았고, 동정만 할 뿐이었다. 차가워서 얼어붙을 것 같은 시선들이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느껴졌다.
그래서 어쩌면, 기대했는 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그런 눈치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피아노 연주는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보기 좋게 빗나간 현실에 나는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 때와 똑같이 절망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뭘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울음을 그치고, 뜬금없이 생각난 것은 한 곡의 연주가 아니었다. 바로 [하농]. 하농은 피아노 연주자들이면 다들 아는 손가락 풀기 전용 악보였다. 그 자체는 절대 연주곡이 아니라, 순전히 손가락 운동을 위해 태어난 악보집이었고,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기능같은건 전혀 없는 악보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음이 아닌, 순전히 손가락 운동 정도로 인식되는 하농이라면 눈이 보이지 않아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농 1번이 떠올랐고, 검은 건반을 필요치 않는 그 악보가, 전혀 기억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악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농 1번이라, 몇 년 전이더라. 지금 20번을 치고 있으니 1년도 족히 넘게 치지 않은 악보였는데…….
눈물을 그치고 조심스레 하얀 건반에 다시 두 손을 얹었다. 여기가 도였나.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건반을 꾹 눌렀다. 피아노 열쇠구멍 바로 위의 도가 맞았다. 왼쪽은?
왼쪽 새끼손가락을 건반으로 꾹 눌렀다. 틀렸다. 아마 라인 것 같았다. 조심조심 두 음을 올라오니 이번엔 제대로 된 도였다.
이걸 내가 연주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잠시,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 하농 1번의 제일 높은 음까지 치닫고 올라가서 내려오기를 두 번이나 번복하고 있었다.
머리는 기억 못한다고 하지만은, 내 몸은, 손가락은, 그리고 이 흑조는 이 악보를 기억하고 나를 이끌어 주었다. 속도가 원래 악보보다 조금 느리긴 했지만, 점점 제 속도로 연주할 수 있게 되고, 지친 탓에 종래에는 조금 느려졌지만 내가 이걸 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도 난 무척이나 기쁘다는 감정을 오래간만에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때때로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것이다. 첫 음을 잡지 못해서 고생하고, 이 음이 아니라서 연주를 되풀이하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몇 배의 노력이 더 들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이 흑조와 함께 연주한다면. 과묵한 녀석이지만 내 말을 들어 줄 유일한 친구이자 내가 한 곡을 완전히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 줄 친구일 테니까.
하농은 연주곡이 아니라 신경이 거슬리지만 나는 이 하농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무척이나 감사해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이 흑조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마지막이 아닐 경우는 살면서 무척이나 많이 있고, 살면서 무척이나 많이 맞딱뜨리게 된다.
나는 그 끝이 교통사고라고 생각했었고,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피하고 싶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 세상의 진리.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 무언가 하나 들어섰다. 까만 공간이 순식간에 새하얘졌고, 그 곳에는 나와 7년을, 아니 이제 10년을 훌쩍 넘어 나와 함께 하는 검은 흑조의 모습이 보였다.
흑조는 여전히 말이 없다. 나를 위로해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를 잡아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흑조에게 고마운 것이 있다면, 나의 못난 연주를 들어주고, 자신의 몸을 내주어 그 곡이 완성될 때까지 묵묵히 지켜봐준다는 사실 하나.
바이엘 100번, 체르니 30번, 40번, 50번, 피아노 소곡집, 하농, 피아노 명곡집, 모차르트, 쇼팽, 바흐, 라흐마니노프.
수많은 책들이 나의 손을, 이 녀석의 몸을 거쳐갔다. 보이지 않는 책들이었지만 소리로 작곡가들의 악보를 따라갔다. 나는 그들이 어떤 의도로 이 곡을 만들었는지, 그 때 그들의 심정은 어땠는지까지 이해하면서 그들의 연주를 최대한 재현해 내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이 통해 어느새 유명세라는 것도 조금은 타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에게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고 다만 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허여멀건한 공간에서만 온전히 눈을 뜰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치세요?’라는 질문은 지난 3년 사이 수 도 없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친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겐 중요하냐고. 흑조는 여전히, 이런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내 연주만 토하며 아름다운 소리를 귓가에 울리게끔 도와준다.
이 녀석을 연주할 때마다 늘 비는 소원은 여전하다. 흑조가 피아노로써의 수명을 이기지 못하고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간다면, 그에 맞춰 나는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눈이 보이지 않는 피아니스트가 지난 시간동안 힘겹게 쌓은 외로움을 곁에서 풀어준 파트너를 위해.
흑조가 이 세상에서 불타 사라지기 전, 그랜드 피아노로써의 수명이 다 하는 그 날 들려줄 수 있는 죽기 전 낼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래를.
내가 써놓고 느끼는 거지만, 이 소설, 진짜 배려심 하나도 없다. 분명 라이트노벨 출판사 사이트인 노블엔진 단편연재란에 올렸지만, 정작 성격은 일반소설에 가까우니(...) 모에한 캐릭터따위 없어, 대사도 없어, 주인공 성별도 애매해... 나참. 근데 1시간 40분동안 퇴고 한 번 없이 원고지 26장을 쓴 것도 어떤 의미로 참 재주가 좋은 것 같다.
아마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 중 초등학교 때 만난 친구 외에는 거의 모르는 사실이지만, 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입학 전, 만으로 꽉 6년간 피아노를 쳤었다. 블랙 스완 송즈에서 몇 개의 설정을 빼면 전부 내 이야기니까. 아니, 고유 설정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블랙 스완 송즈는 내 이야기 그 자체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기형적으로 바깥으로 휜 것은 옥타브를 왔다갔다 하는 악보를 보게 되었을 때부터라고 추정 중이다. 왼쪽은 안그런데(왼손은 엄지를 벌리는 일이 잦으니까) 오른속은 새끼를 워낙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처음 간 피아노 학원에서 오기 싫다고 첫날부터 징징댄 것도 내 추억 중 하나.
흑조(검은 그랜드 피아노)까진 아니지만, 시골집에 가정용 검은 피아노는 있다. 그 녀석은 이제 조율을 안한 지 꽤 오래되서, 한 번 더 조율을 해야 할 거고, 건조기도 워낙 안써서 속이 썩었을 지도 모르겠다.
원래 블랙 스완 송즈의 원제는 손가락 분질르기 참 좋은 운동(진짜다) 였다. 하지만 전에 피아노를 애정을 가지고 쳤던 사람이 진짜 그 제목으로 하는 건 과거의 나에 대한 무례인 것 같고, 그랜드 피아노의 유려한 곡선이 백조같아, 검은 그랜드 피아노 -> 흑조, 흑조의 노래(BLACK SWAN SONGS)로 정했다. 백조 하니까 곧바로 저게 떠오른 것은, 아마도 에픽하이의 3집 타이틀 리패키지가 <BLACK SWAN SONGS>여서겠지. 물론 그 앨범과 관련이 없기는 개뿔, 엄청 많다. 마지막에 나오는 백조가 죽기 전 부르는 노래 그 자체가 SWAN SONG, 여기선 흑조니까 BLACK을 붙였을 뿐인 것... 도 개뿔 그냥 앨범에서 온거라니까(...)
* 혹시나 싶어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나 싶어 명곡집 정보를 찾다가 피아노도 급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지금까지 쳤다면 피아니스트가 진짜 됐을까 싶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건 글과 그림이니 그러진 않을 것 같다. 다만 취미로는 여전히 즐기긴 하겠지만.